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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성엽 의원 동생도 함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성엽 의원은 현재 국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유성엽 의원프로필(나이, 학력, 경력 등)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유성엽 의원


29일 국회에서 열린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위원장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이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그의 이력과 프로필이 주목받고 있다.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전북 정읍시 고창군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3선 의원이라고 한다.



그는 전라북도당 위원장과 세월호 대책특별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으며, 전라북도 도지사 비서실장과 환경보건국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구속논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굳이 구속할 필요 없다는 의견을 폈다가 논란이 되자 사과한 바 있다고 한다.



국민의당 경제재도약추진위원장, 원내수석부대표을 맡았으며, 20대 국회 전반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유성엽 국민의당 의원(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김상곤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교육부는 부실한 자료를 오전까지 보완, 수정해달라""이렇게 자료제출을 미루다가 회의가 끝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어 "자료제출이 부실해서 문제 생기는데, 오늘 의원님들이 자료제출한 사항들이 다 올 때까지 차수를 변경해서라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밖에 붙여진 부착물은 국회 사무처가 철거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대해 사무처가 철거를 결정해 (부착물을) 떼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유성엽 의원은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정읍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3년 10월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2006년 초 열린우리당 전북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패배하였다.



2008년에는 복당이 불허돼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읍 선거구에서 뽑혔다.



그럼에도 민주당에서 복당을 불허, 4년 내내 무소속으로 있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서 재선되면서 민주당에 복당했다. 

이후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정읍/고창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프로필



출생 1960년 01월 25일, 전북 정읍시

소속 국민의당

직업 국회의원

성별 남성

학력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관련 인물/단체 유재길(동생)

경력

제27회 행정고시 합격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

전라북도 기획관

전라북도 문화관광국장

전라북도 공무원교육원장

전라북도 환경보건국장

전라북도지사 비서실장

전라북도 경제통상국장

민선3기 정읍시장

제18대 국회의원(정읍시)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위원

국회 미래전략 및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 위원 (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제19대 국회의원 (전)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헌법재판소(강일원, 김이수, 안창호)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야당 간사)

민주당 직능위원회 수석부의장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야당 간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야당 간사) (현)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제3정책조정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전라북도당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현)

대한민국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정읍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2003년 10월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2006년 초 열린우리당 전북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으나 패배하였다.


2008년에는 복당이 불허되어 무소속으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읍 선거구에서 당선되었으나 민주당에서 복당을 불허, 4년 내내 무소속으로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 아청법 발의에 참여하기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역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서 재선되었고 이후 복당되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북도당위원장이었으나 탈당하여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 정읍/고창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농어촌 특별 선거구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선거구의 면적이 대한민국 선거구의 평균보다 5배 이상인 경우 인구가 부족해도 하나의 선거구로 설정하자는 것. 하지만 이는 농어촌 지역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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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용 녹음파일 조작 파문과 관련 국민의당 이유미 당원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당 이유미 당원 단독으로 증거 조작이 된것인지, 국민의당 이유미 당원에게 배후가 있는것인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유미 당원과 국민의당에 대한 입장, 국민의당 이준서 당원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이유미 이준서 국민의당



문준용씨에 대한 입사 특혜 의혹 관련 제보 내용을 조작한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씨가 긴급체포됐다.



지난 26일 오후 9시12분께 서울남부지검 공안부(부장검사 강정석)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씨를 긴급체포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제자인 이유미 국민의당 당원은 최측근이자 대선캠프에도 참여한 인사로 전해졌다. 




또한, 이유미 당원은 안철수 전 대표가 교수 시절 제자로서 ‘청춘콘서트’ 서포터스 활동한 것을 인연으로 2012년 대선 기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 함께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국민의당 당원 이유미 씨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 씨에 대한 입사 특혜 의혹 관련 제보 내용을 조작한 것과 관련, “안철수 전 후보 입장은?”이라고 질문했다.



이날 최민희 전 의원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일개 당직자 이유미 씨 혼자 그 엄청난 불장난을 저질렀을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또한, 최 전 의원은 “이유미 씨는 ‘시켜서 한 일’이라고 주장한다는데 이 엄청난 공작에 배후가 있는지, 어느 선까지인지 검찰이 철저히 조사해 밝혀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이유미 국민의당 당원의 녹취·메신저 조작 사건에 대해 대가와 배후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 대표는 문준용씨에 대한 허위 녹취·메신저 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진행자 김어준씨는 "본인(이유미씨)은 지시로 한 일이라 하고, 국민의당에서는 이유미씨가 조작했다는 게 현재까지의 입장이다"라며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너무 기가 막혀서 믿기지 않았다"며 "최고위원 한 분이 연관돼 있고 이미 조작 사실을 알았다는 것도 기겁할 일이었는데 지시 이야기까지 나와서 도대체 끝이 어디인가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어준씨가 "(이유미씨가) 일개 당원이라고 국민의당에서 표현했다"고 말하자 이 대표는 "출마까지 하셨던 분 아니냐. 그건 아니죠"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당선 가능성이 99%였던 대선 후보의 가족과 관련된, 대선 정국의 가장 결정적 사안이었다"라며 "보통 강심장으로는 어렵다. 이런 엄청난 일을 위험 부담을 안고 할 때는 뭔가 약속이나 대가 없이 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이유미씨의 단독 범행이 아닌 배후가 있을 가능성도 점쳤다. 이 대표는 "이 젊은 여성이 그런 일을 혼자 단독범으로 하는 건 내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치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선에서 얼마나 심각하고 희생과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 상당히 인지돼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당 당원이 문준용 씨 특혜의혹을 조작했다면서 대국민 사과했다. 박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혼란을 드려 공당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당사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아들 준용씨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허위사실 공표의 경위에 대해 "국민의당은 이준서 전 당 최고위원으로부터 지난 대선과정 중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입사 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개입 의혹과 관련하여 이유미 당원으로부터 넘겨받은 관련 카톡 캡쳐화면 및 녹음 파일을 제보 받았고, 그 내용의 신빙성을 검토한 바 카톡에서 언급된 내용이나 대화자 이름 등을 확인한 결과, 그 제보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 자료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에게 관련 자료를 제공했던 이유미 당원이 당시 제공한 자료가 본인이 직접 조작하여 작성한 거짓 자료였다고 고백했다는 것.



같은 방송에 출연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도 “모든 게 이유미 씨 선에서 이뤄졌다는 국민의당 발표를 믿어주려면, 어제 비대위원장 사과부터가 잘못된 일”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즉각 책임론을 제기한 상황.



이 가운데 자유한국당만큼은 잠잠해 궁금해 하는 네티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 하루 전 문준용 씨를 지명수배하기까지 했다. 당시 정준길 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문준용은 한국고용정보원 부정·특혜 채용, 황제 휴직, 황제 퇴직금 문제로 대한민국 청년과 국민으로부터 직접 해명을 요구받고 있는 사람”이라며 “문 후보 아들 문준용에 대한 국민 지명수배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준용씨의) 주요 예상 출몰 지역은 경북 포항과 서울, 그리고 미국”이라며 “주로 미국에서 거주하지만 포항시립미술관이 지난달 20일부터 개최한 'Play art(플레이 아트), 놀이하는 미술전'에는 문준용이 작가로 초대됐고, 직접 포항시립미술관에 와서 작품을 설치했다고 한다. 문 후보의 (경남 양산) 집 부근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출몰지역’까지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제보를 해주시는 분께는 홍준표 후보를 포함해 본인이 원하는 한 분과 프리허그(Free hug)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겠다"며 제보에 대한 포상을 내걸고 ‘지명수배’ 담당자 연락처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이유미 당원 등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26일 국민의당은 19대 대선 당시 문준용 특혜 채용 의혹 증거가 조작된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다만 국민의당 측은 당원인 이유미의 단독 행동이라는 입장이지만 이유미는 이준서 최고의원의 지시를 받았다고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박주선 비대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대선 기간 중 국민의당은 문준용의 파슨스 스쿨 동료 증언을 확보하여 문재인 당시 후보의 취업 개입 의혹을 언론을 통해 공개를 하였으나, 의혹 제기 증거로 사용되었던 자료가 당시 제보하였던 국민의당 당원에 의해 직접 조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녹취록이라고 주장했던 카카오톡의 대화 화면 및 음성이 조작되었다고 한다.



이에 국민의당은 문재인 대통령 및 문준용에게 사과를 하면서 동시에, 검찰에 수사 촉구와 해당 상황이 어떻게 발생하면서 진행되었는지 자체 진상규명팀을 만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1월 국민의당에 영입됐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지난 2011년 설립한 친환경 그린디자인 전문기업 에코준컴퍼니를 설립했으며, 이 회사는 세계 3대 디자인어워드(독일 레드닷, IF 디자인어워드, 미국 IDEA)에서 수상, 2014년에는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와 합작 벤처 계약을 맺기도 했다.



당시 안철수 전 후보 측은 이 대표에 대해 “기업의 이익보다 사회변화를 꿈꾸는 소셜 이노베이터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 전직원이 기부를 하는 등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도 “지금까지 기업의 이익보다는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다”며 “국민의당이 청년들의 희망과 행복을 실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 위원장님을 찾아뵙고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의지를 받아들여 국민의당은 이준서 전 최고위원 영입 다음달인 지난해 2월,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청년몫 최고위원에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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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선 의원이 오늘 국민의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도하차설'을 일축하면서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박주선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는 게 제가 살아온 신념"이라며 이렇게 전하였습니다. 민주당 경선으로만 관심이 많이 쏠리고 있고, 사실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에 대한 국민과 저의 관심은 낮은 편이지만, 어떤 인물(프로필, 나이, 학력, 경력, 고향 등)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박주선 의원 국회의원 박주선 프로필 - 국민의당ㅡ 경선 후보

2016.02.02 (현) 국민의당 최고위원 

2016.06.09 (현) 대한민국 국회부의장

생년월일: 1949년 7월 23일

당선지역: 광주 동구남구을

당선회수: 4선

소속정당: 국민의당

소속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당선이력: 16,18,19,20대

특기: 테니스

취미: 등산,테니스

전화번호: 02-784-5288

보좌관: 이미숙, 한상범

비서관: 박영식, 하정훈

비서: 정은자, 최호연, 최종희

약력

광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과대학원 석사과정 2년 수료 

1974.03 제16회 사법시험 수석합격 

1976.10~1979.10 육군 법무관 

1979 서울지검 검사 

1983 제주대학교 강사 

1989.03~1990.11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장 , '동백장학회' 설립 

1993 대검 중수1,2,3과장 

1995 서울지검 특수1,2부장검사 

1997.08~1998.02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DJ비자금 수사 유보 결정) 

1998.02~1999.11 대통령 법무비서관 


2000.05.30~ 16대 국회의원(전남 화순/보성), 새천년민주당 총재 특보 

2002.05.09~ 새천년민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2003.01~ 새천년민주당 개혁특별위원회 위원 

2003.02~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중국특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2003.09~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위원장 

2003.11.12 새천년민주당 전국 대의원 대회 준비위원장 

2003.11.12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직무대행 

2005.12~ 민주당 인사영입 위원장 

2005.12.25 세계일보 선정 올해의 인물 

2006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2006.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2007.4.13 민주당 중앙위원 

2007.8.14 광주동구 지역위원회 위원장 

2007.10.26 제17대 대통령선거 광주선거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및 후보특보단장 

2008.04.09 제18대 국회의원 (전국 최고득표율 88.7%) 

2008.07.06 민주당 최고위원 

2008.07.08 현, 국회 환경포럼 대표 

2008.08.27 현,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위원 

2008.9.1 - 2009.8.31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2009.01.13 민주당 국회유린 및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2009.02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2009.03.17 민주당 복지지원금 집행비리 진상조사 특위 위원장 

2009.03.30 민주주의수호 및 공안탄압저지 대책위원회 위원장 

2009.04 4.29 재보궐선거 호남 선거대책본부장 

2009.06.01 이명박 정권 정치보복 진상규명 특위 위원장 

2009.09.14 민주당 임진강참사 진상조사단 위원장 

2009.10.30 민주당 무효언론악법폐지투쟁위원회 위원장 

2009.12.07 한명숙 상임고문 공안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 


2010.03.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 검찰개혁소위 위원장 

2010.05. 6.2 지방선거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2010.10.03 민주당 최고위원 

2011.03.07 현, 국회남북관계특별위원회 위원장 

2011.09.23 민주당 이명박정부권력형비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 

2012.04.19 제19대 국회의원 

2012.07 국회외교통일위원회 위원 

2013.08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2014.07.06 국회평창동계올림픽 및 국제경기대회지원특별위원회 위원장 

2015.07.09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2016.02.02 (현) 국민의당 최고위원 

2016.06.09 (현) 대한민국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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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 국민의당 화성을 지역위원장 - 문재인 비판 - 대선후보 사퇴김형남김형남 국민의당

국민의당 경기도당

대변인 · 2016년 9월~현재 · 경기도 수원 국민의당

화성시을 지역위원장 · 2016년 6월 9일~현재 김형남 국민의당 화성을 지역위원장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law)

경희대학교 ngo대학원 NGO정책관리 · 서울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 신학 · 대전

경기도 오산 오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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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 국민의당 입당 불허 및 장성민 프로필 - 전 의원

장성민장성민 국민의당 입당 불허


장성민(張誠珉, 1963년 9월 5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재택근무 비서로 정가에 첫발을 딛었으며, 1996년 15대 총선을 계기로 정계 입문한 50년대생 DJ 키즈 4인(김영환, 정동영, 천정배, 추미애)의 뒤를 잇는 민주당내 대표적인 60년대생 정치인이었다.

학력


1982년 영일고등학교 졸업

1989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1992년 서강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경력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금천구) - 선거법 위반으로 2002년 1월 당선무효

듀크 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참고로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고 금천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17대 대선에서도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출마할 생각을 했지만 포기했다. 


새누리당의 김태호 의원과 비슷한 연배인데다 각각 동교동, 상도동 비서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는 점 때문에이들의 행보를 비교하는 호사가들도 있다.


특히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저술활동을 시작해, 50대 초반까지 9권의 전문도서와 1권의 번역서, 1권의 대중서를 내며 학식을 쌓은 장성민 전 의원과, ... 전문도서를 쓸 정도의 공부는 30대 초중반에 마치고,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만 800명에 달하는 든든한 인맥을 형성한 김태호 전 경남지사의[3] 모습이 매우 대조되기도 하는만큼, 세월이 흐를수록 이 두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관심사. 


그간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문명(文名)을 쌓아 2017년 1월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는 3만명의 인파가 모인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콘서트에서 국민의당의 대선 경선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사실상 정치 활동 재개 및 대권 도전을 선언 했으나 국민의 당에선 입당을 거부 했다. 장성민은 내가 안철수 이길까봐 무섭냐라며 정신승리 했다 극우매체 미디어워치에선 장성민을 두둔하며 국민의당과 호남 정치세력, 박지원을 비난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그동안 김대중 재단의 이사를 맡으면서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끈을 유지하고 있었던 장 씨가 정말로 대권에 뜻을 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치 활동을 재개해 그동안 쌓은 학식을 활용하는데 의의를 두는 것인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그리고 97년 대선 관련 회고록 구술 자료를 디스켓 단위로 모아놓을만큼 DJ를 존경했던 장 씨가, DJ의 화해-통합 행보처럼 과거 갈등을 빚었던 사람들과 화해할 수 있을지[5] 여부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의당이 장성민 전 의원의 입당을 최종 불허했다.





국민의당은 22일 최고위원회를 열고 장 전 의원의 '5·18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을 이유로 이같이 결정했다고 김경진 수석대변인이 밝혔다.

 

김 수석대변인은 "판단 근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당시 장성민 진행자의 발언"이라면서 "당시 출연자, 패널 발언 관련해 심의 있었고 그 내용 기초로 판단할 때 본인이 최종 마무리 멘트를 직접 작성해서 썼고 멘트 자체가 5·18폄훼 내용을 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심위의 판단자료가 있고 이에 기초해서 우리당 사무국에서 조사했고, 사무국 조사 내용을 기초로 최고위 토론벌인 결과 장성민 전 의원이 발언했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자료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E%A5%EC%84%B1%EB%AF%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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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국민의당 정당인, 전직 국회의원 프로필과 정치인생


손학규손학규 국민의당 정당인 손학규 국회의원손학규 사진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 현 국민의당


출생일 1947년 11월 22일, 경기 시흥시

소속         국민의당

직업         정당인, 전직 국회의원

신체 혈액형 AB형


학력

1981 ~ 1988 옥스퍼드 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1965 ~ 1973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62 ~ 1965 경기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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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민주당 상임고문

2011.04 ~ 2011.12 제18대 국회의원

2010.10                 민주당 대표

2008.09                 민주당 서울시당 고문

2008.02 ~ 2008.07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2008.01 ~ 2008.02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2002 ~ 2006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2002 ~ 2006         제31대 경기도 도지사

1996 ~ 2002         제15,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1996 ~ 1997.08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

1995.08 ~ 1996.05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대변인


1992 ~ 1996 제14대 민자당 국회의원

1992 ~ 1993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1990 ~ 1993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88 ~ 1990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86 ~ 1987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197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운동 간사


수상


2005 한국을빛낸 CEO 글로벌경영부문

2001 평등부부상

2001 백봉 나용균선생 기념사업회 제3회 백봉신사상

2000 백봉 나용균선생 기념사업회 제2회 백봉신사상




생애


손학규는 1947년 11월 22일에 경기도 시흥군(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아버지 손병화와 어머니 양현자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사로 생활하다가 그가 태어날 무렵에 교장으로 승진했지만, 그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손학규와 그의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1959년에 서울매동국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경기중학교를 졸업하였고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한 손학규는 3학년 무렵에 대학생들과 함께 시청 앞 국회의사당에서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하였다.


1965년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했다. 투쟁이 끝난 뒤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대학 2학년 무렵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 정학을 받았다. 무기 정학 중에 데모를 해서 다시 무기 정학을 받았다. 연이어 무기 정학을 받은 손학규는 강원도 함백탄광에 가서 광부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했다. 나중에 복학한 그는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대학을 졸업한 손학규는 1969년 육군에 입대(군번 61006472)하여 1972년에 병장 만기 전역한다. 군대에서 제대한 손학규는 소설가 황석영과 함께 구로공단에 작은 자취방을 얻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손학규는 한국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진보 기독교 단체 NCCK의 박형규 목사를 만나 기독교 빈민선교운동에 투신한다. 해방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전태일로부터 충격을 받은 한국의 에큐메니컬운동은 도시산업선교를 통하여 노동자와 빈민의 인권문제를 위해 활동했다. 청계천에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던 손학규는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주세력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유신독재체제는 박형규, 김관석, 권호경 목사 등을 구속시켰고 손학규를 검거하기 위해 현상금 200만 원에 2계급 특진을 걸었다. 손학규는 2년 동안 숨어 살며 원주의 사과 과수원, 서울의 철공소에서 일했다. 손학규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후 기독교 사회운동에 몸담고 있었던 손학규는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최성묵 목사 등을 만나 사후 대책을 논의하다가 수사당국에 검거된다. 김해 보안대로 연행되어 48시간을 무작정 두들겨 맞고 문초를 당하던 손학규는 유신독재체제가 붕괴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1980년 봄에 손학규는 WCC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1987년에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손학규는 5공 말기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맡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자료집인 우리의 딸 권양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년에서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교수 시절 동안 손학규는 진보적인 소장학자로 명성을 떨치며 최장집 등 진보적인 학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며 한국 사회의 미래에 관하여 토론했다.


재야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손학규는 1993년에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제14대 총선 보궐 선거를 통하여 경기도 광명시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원으로서 재선한 후, 1996년 11월에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었다. 당시로서는 최연소 장관 기록이었다. 1997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손학규는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3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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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에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2007년 8월 민주평화계의 대통합을 이루어 내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해, 대통합민주신당 국민경선에 참여했으나 정동영에게 패해 2등으로 낙선했다.


2008년 1월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된 손학규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도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여 2008년 4월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같은 해 7월 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춘천으로 떠나 칩거했다.


그는 2010년 8월 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며 정계에 복귀했다.


2010년 10월 3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성과 무상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하고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민주당 대표가 된 손학규는 2010년 12월 8일부터 12월 28일까지 전국을 돌며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2011년 1월 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했다.

2011년 10월 4일, 민주당이 내세운 후보 박영선 의원이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손학규 대표가 물러나겠다고 선언했으나, 민주당 의원들의 간곡한 만류로 하루만에 대표직 사퇴를 철회하기로 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편 손학규는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시절이던 2012년 6월 14일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8월 25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완전국민경선을 시작했으나, 26일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모바일 투표 방식의 문제를 제기하며 경선 중단을 요구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이미 실시된 제주,울산 지역의 투표를 재검표하고 모바일투표의 고지사항을 강화하기로 결정했으나 세 후보가 울산경선에 불참함으로써 경선은 파행으로 치달았다. 다음날, 제주울산지역 모바일 투표에 문제점이 없다고 결과가 발표되자 후보들은 경선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손학규는 문재인에게 패하여,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이후 문재인이 대선에서 패함으로써, 정권 교체는 실패하였다.

2013년 10월, 손학규는 10·30 경기 화성갑 보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3] 이에 민주당은 손학규를 화성갑에 전략공천하는 방안을 내세웠으나, 그는 "대선에 패배, 정권을 내주게 한 죄인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게 국민 눈에 아름답게 비쳐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 입장에서 아무리 희생과 헌신을 한다고 생각해도 국민 눈에는 욕심으로 여겨질 것이다. 국민 눈으로 당과 나를 되돌아보니 이 결론에 도달했다"며 고사했다.[3]

2014년 7월 31일,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 패하였으며,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다.

2016년 10월 20일 손학규는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였다.

2017년 2월 8일 손학규는 자신의 정치기반인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의 통합을 선언하였다.


약력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규탄 시위로 이중 무기정학 처분. 법대의 조영래, 상대의 김근태와 같이 학생운동하며 서울대 삼총사로 불림.

1969년 민주화운동 관련 1년 투옥, 4학년 때 군 입대 병장 제대.

1973년 소설가 황석영과 노동운동 시작. 구로공단의 전자회사와 목공장에 위장취업. 이후 도시산업선교회의 박형규 목사와 함께 청계천 판자촌에서 빈민운동 전개. 수배자로 2년간 도피생활. 원주농장에서 막노동.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의 철공소에서는 용접 일을 함. 대학 3학년 때 미팅에서 만난 이윤영과 7년 연애 끝에 결혼. 수배 중 모친 장례식에서 체포. 사건 종결 후 KNCC(지금의 NCCK)의 교회와 사회 위원회 간사 역임.

1979년 부마항쟁 진상조사시 마산시에서 계엄사령부에 체포되어 김해보안대에 수감. 이틀간 취조 없이 구타로 사망 직전에 이르렀다가 박정희 사망으로 풀려남.

1980년 영국 유학 중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맡아 부천서 성 고문 사건 자료집인 우리의 딸 권양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

1989년 인하대학교, 서강대학교 정치학 교수.

1993년 경기도 광명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제14대) 당선.

1996년 제15대 총선에 재선 성공, 5월 18일을 국가 기념일로 건의 시행함.

1996년 11월~1997년 8월 보건복지부 장관.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3선 성공, 총재 제도 폐지. 상향식 공천제 도입. 당권-대권 분리 등을 주장. 여, 야 모두에서 채택함.

2002년 6월 13일 민선3기 경기도지사후보로 당선.

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대통합민주신당 예비후보로 국민경선에 참여.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선출.

4월 제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종로에 출마하여 낙선.

7월 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 퇴임

2010년 10월 3일 인천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로 선출.

2011년 4월 27일 제18대 국회의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선거구 보궐선거 당선

2014년 7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수원 병) 선거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 정계 은퇴 선언.

2017년 2월 7일 정치적 지원조직인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을 통합해 입당하였다.


-자료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86%90%ED%95%99%EA%B7%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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