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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 프로필 및 소개 - 직권상정




정세균(丁世均, 1950년 11월 5일 (음력 9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쌍용그룹 상무이사로 재직하다가 1995년 15대 대통령 김대중의 제안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으로 20대 국회에서 2년 임기의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국회의장의 임기는 2년이다.



직권상정(職權上程)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 안건이 국회의원 또는 정부로부터 이송되면 해당 소관상임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게되는데, 심의가 끝난 안건은 본회의로 상정되거나 폐기된다. 위원회에서 제대로 심의하지 못해 기일이 연기된 경우, 국회의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위원회의 의결 없이 바로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데, 이것을 직권상정이라고 한다.

학력


1963년 동향초등학교 졸업

1966년 진안주천중학교 졸업

1966년 전주공업고등학교 입학

1969년 전주신흥고등학교 졸업

1974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LL.B.

1986년 뉴욕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과정 수료)

1993년 페퍼다인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2000년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BA

정세균은 1950년 11월 5일에 전라북도 진안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탓에 전주공고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주신흥고로 전학하게 되었다. 1970년에 고려대학교 법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유신 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청년기

1978년에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쌍용그룹에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쌍용그룹의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재원 시절 뉴욕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LA 주재원 시절 페퍼다인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1995년까지 쌍용그룹에서 수출 관련 업무를 맡았다.


정계 입문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김대중의 정계 입문 제안을 받고 1995년 김대중의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20대 국회까지 국회의원 6선까지 역임했다. 참여 정부 시절 2006년 2월부터 2007년 1월까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기 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으로 활동했고, 2008년 7월 6일에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정세균은 2009년 7월 24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발하여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낸 뒤 원외에 머물러오다 제5회 지방 선거의 승리에 힘입어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해 8월 2일에 7.28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약력


1973년 고려대학교 총 학생 회장

197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1978년 ~ 1995년 쌍용그룹 입사 (상무 이사까지 재직)

1995년 민주당 진안 무주 장수 지구당 위원장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원내 부총무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

2002년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

2004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2005년 국회 운영위원장

2006년 산업자원부 장관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당 의장

2008년 민주당 대표

2010년 10월 민주당 최고위원 당선

2016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2016년 제20대 전반기 국회의장

기타 사건들


2009년 7월 19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 결사저지를 외치며 국회 당 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선언하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여야 영수회담을 요구하였다.

2009년 7월 22일, 그는 민주당의 원내대표인 이강래 의원과 함께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국회의장석 점거에 강력항의하며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09년 7월 24일, 민주당 대표로 있었던 그는 기자회견에서 “언론악법은 무효로, 부정투표와 불법 폭력에 의한 표결처리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 그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가칭) 날치기 처리 사건과 관련하여 의원직 사퇴서를 강기정 민주당 대표비서실장을 통해 김형오 국회의장에 제출하였으며, 국회 대표실과 의원회관에서 철수한 이후 7월 4번째 주부터 민주당 중앙당사로 출근하기로 하였다.

2009년 12월, 의원직 사퇴서를 던진 지 4개월이 지나도 수리될 기미는 전혀보이지 않아 '정치쇼'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2009년 12월, 2006년 참여정부 산업자원부 장관 재직 시절 곽영욱의 인사청탁 개입여부와 관련하여 동아일보의 보도로 논란이 일었다.

2010년 7월 28일 재보선 패배에 책임을 물어 대표직 사의를 표명했다.

2010년 9월, 2009년 12월 인사청탁 관련 동아일보의 보도가 오보임이 입증되었다. 동아일보는 "사실 확인 결과, 정세균은 곽영욱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거나 그 대가로 곽영욱을 대한석탄공사 또는 한국남동발전 사장으로 추천한 것이 아님이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라고 정정보도문을 냈다.

2010년 10월 3일 인천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당선.

2011년 4월 7일 싱크탱크 "국민시대" 출범

2016년 7월 27일 정세균은 자신이 이인수 수원대학교 총장의 국감 증인 채택을 무마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를 상대로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국회의장의 임기는 2년이다.



-자료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84%B8%EA%B7%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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