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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신문지를 깔고 드러누워서 이슈가 되고있다. 노회찬 의원은 감사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열악한 구치소 생활을 하며 인권탄압 받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한 질의 도중 신문지를 펼쳤다. 노회찬 의원에 대해 프로필(나이, 학력, 경력 등)을 통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노회찬 의원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이 같이 말하며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누웠습니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엔인권이사회에 '서울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일반 재소자들의 열악한 생활에 비해 박 전 대통령의 생활은 편안하다고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구치소 내 과밀수용 상태를 직접 보여주겠다며 "서울구치소 재소자 1인당 수용면적은 1.06㎡"라면서 "알기 쉽게 계산을 해보면 신문 2장 반인데 보여주겠다"고 말한 뒤 그 위에 몸을 누였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일어나 자리로 돌아온 뒤 "제가 누운 걸 보면 알겠지만 (일반 재소자들은) 옆사람과 닿는다""이런 곳에서는 옆으로 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이 수용된 거실은 10.08㎡로, 일반재소자들 수용 면적의 10배"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일반재소자의 과밀수용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을 언급하며 "인권침해라고 해야 하는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현재 재소자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역시 노회찬이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가 진행된 19일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감사원 4층 대회의실 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이게 얼마나 작은 면적인지 제가 실제로 한번 누워보겠다"고 했습니다.



한매체에 따르면 노회찬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구치소의 과밀수용 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사실을 언급하면서 "6.38㎡에 6명이 수용됐는데 1인당 평균 1.06㎡의 면적이 주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1.06㎡가 어느 정도인지 숫자로 말하니 잘 감이 안 오는데 일간신문의 2장 반이 조금 안 된다"며 신문지를 붙인 패널을 펼쳐 보였습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이어 신문지 패널을 황찬현 감사원장 앞에 깔고는 그 위에 눕자, 양팔이 신문지 밖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알기 쉽게 몸으로` 박근혜 측 주장을 반박한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제가 누운 것을 보셨겠지만 바로 누우면 옆 사람하고 닿는다"며 "여기서 자야 한다면 모로 누워서 자야만 간격이 유지된다"고 말했습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CNN을 통해 교도소 수용상태에 대해 유엔 기구에 인권침해로 제소한다고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수용된 거실의 면적은 10.08㎡"라며 "인권침해로 제소할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 수용자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지난 8월 부산구치소에 수감된 원고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부산고법은 정부가 150만 원, 300만 원을 각각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며 "과밀수용된 수용자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같은 판결을 받아낸다면 정부가 배상해야 할 금액이 740억 원 정도가 나온다"고 추정했습니다. 그는 "국고 손실을 막고 국가의 위법한 수용을 중단시키기 위해 감사원이 직무감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노회찬 프로필


출생 1956년 08월 31일, 부산

소속 정의당

직업 국회의원

성별 남성

학력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관련 인물/단체 김지선(배우자)



경력

경남근로자건강센터 홍보대사

정의당 원내대표

제20대 국회의원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새진보정당추진회의 공동대표

제19대 국회의원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

진보정당건설 추진위원회 위원장

진보신당 대표

진보신당 공동대표

민주노동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

조선왕조실록 환수추진위원

민주노동당 삼성불법정치자금 및 안기부불법도청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제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노동운동가입니다. 2017-10-19 15:47:45 기준 제20대 국회의 창원시 성산구의 국회의원으로 정의당 소속입니다. 대중정치의 감성을 갖고 있는 진보정당계 유일한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56년 부산에서 유복한 환경 가운데 태어나 문화적으로 풍부한 유년시절 속에 성장했습니다. 부산 초량국민학교, 부산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첼로를 배웠으며, 펜싱과 육상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1972년 부산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하여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때부터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습니다.



경기고 재학시절에는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습니다. 유인물을 만들어서 배포하는 일을 하며 이 시기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 다양한 책을 접하며 함석헌, 선우휘, 백기완 등 재야인사들과 만나게 됩니다. 당시 경기고 동기 중에는 이종걸과 황교안이 있습니다. 또 1년 선배로는 정두언 전 의원이 있습니다. 나중에 박근혜 정부 말기 탄핵 정국에 "황교안 대행과 고교 동창인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 입시에 낙방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군대에 지원해 입대합니다.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에 입학 후 민주화운동을 계속 하던 중 광주 민주화 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조직화된 노동자가 앞장서야 근본적인 변혁이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듭니다. 그는 고려대학교 재학 중인 198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현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 등을 따서 용접공으로 현장 노동자들 틈으로 섞여들어가, 일명 '학출'로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노회찬은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죄로 수배되었습니다. 그는 꽤 긴 시간 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도망다녔습니다



사실 노회찬의 정계입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9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그가 속한 인민노련의 노선 변화와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90년대에 들어 동구권의 붕괴와 소련 해체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제도권으로 나와서 활동해야 한다고 노선을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인민노련은 합법 정당 운동을 위해 한국 사회주의 노동당 창당위원회로 전환하게 되고, 노회찬은 진보정당추진위원회의 대표를 역임하게 됩니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는 95년 9월 24일, 또다른 진보정당운동세력인 민중정치연합 과 결합하여 '진보정치연합'으로 재편되었습니다.



그리고 95년에는 '반3김'을 구호로 내세운 개혁적국민정당 창당준비위에 가담했습니다. 이 정당은 그해 10월 창당하여 꼬마민주당과 결합하여 통합민주당을 이루었습니다. 노회찬 역시 통합민주당에 합류하였고, 강서을을 지역구로 총선을 준비했지만 사면복권이 안되어서 실패. 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원외인사로 남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담으로 이당시 원외인사로 활동하던 노회찬은 <어, 그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대중역사서를 집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책들에 비하면 그 수명은 참으로 짧았지만, 이색적인 이력 입니다.



제도권 정치를 향한 노회찬의 발길은 진보정치연합의 대표로 권영길의 대선 출마를 지원하는 것으로 이어딥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민승리 21과 민주노동당을 거치며 성공적으로 안착. 이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이때 노회찬 의원이 각종 토론 프로에 나오며 촌철살인과 함께 일명 대중을 웃기는 유머러스한 컨셉의 토론으로 인기를 끌게 되고 이후 대중적인 인지도의 진보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 NL-PD 갈등이 심해지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초기의 공동 당대표를 역임하였습니다.


2010년엔 서울시장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이때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부하고 완주한 것 때문에 일부 야권 지지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도 성의있게 단일화 협상을 하지 않았음이 훗날 나꼼수에서 밝혀지는데, 이때 노회찬 의원이 게스트로 출연해 밝힌 바에 의하면 민주당쪽에서 자신에게 선거기간 동안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고 토로하며 물러나려고해도 물러날 명분조차 안주지 않았느냐고 말했습니다. 이후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밀고 나가다 결국 부결되면서 심상정, 조승수와 함께 당을 탈당했고,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해 치른 19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서울특별시 노원구 병)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2017년 1월 11일, 이명박계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창당 시, 축하 인사 차 찾아와서 이재오에게 반갑게 인사한 다음 축사를 낭독하기도 했는데, 그가 이명박에 대해 평소 비판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좀 이례적입니다. 하지만 노회찬은 과거에 이명박과도 인연이 있었으며, 특히 이재오의 경우 존경하는 운동권 선배 중 한 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거기다가 이명박과 노회찬 모두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 한편으로 이재오 또한 2013년 당시 안기부 X파일 문제로 노회찬이 의원직을 상실할 때 안타까움을 표현했으며 그의 의원 상실직을 막고자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발의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실용정부시절, 노회찬과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에서 탈퇴한 직후 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때랑 창당 2년차 때,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2017년.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인준 투표 중 신 새누리당의 조원진 의원이 여당 상대로 마구 항의를 했는데 그걸 조금 떨어진 곳에서 페이스북으로 라이브 중계를 했습니다. 근데 이때 모습이 안 찍는 척 안 보면서 조 의원을 찍는 게 언론에 잡히면서 노 룩 라이브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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