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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고마워요 문재인’이 이슈가 되고있다.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가운데 실시간 검색어에 ‘고마워요 문재인’이 상위 검색어에 올랐다. ‘고마워요 문재인’이라는 문구로 문재인 대통령을 축하하거나 그 의미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고마워요 문재인’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고마워요 문재인


문재인 정부의 출범 100일을 맞아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응원하는 팬들의 깜짝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7일 문 대통령 취임 백일기념으로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 100일 축하선물로 특정 문구를 포털 검색어로 띄우기 위한 사전 논의가 있었습니다. 


축하 이벤트의 시작은 한 육아 커뮤니티에서 시작됐습니다. 해당 육아 커뮤니티는 공지를 통해 '고마워요 청와대'와 '고마워요 문재인' 두 가지의 제시어를 오전 10시, 정오, 오후 2시, 오후 4시, 오후6시 짝 수 시간대를 집중 공략하라는 내용을 알렸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의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발언 논란 때 엄청난 화력을 과시했던 이른바 ‘맘카페(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의 커뮤니티)’회원들이 ‘고마워요 문재인’ 아이디어를 낸것입니다. 



‘고마워요 문재인’은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네티즌의 취임 100일 축하 선물입니다. 특정 시간대에 ‘고마워요 문재인’이란 문구를 집중 검색해 ‘실검’ 1위로 만들어 감사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실제 이들은 해당 시간대에 집중 검색을 실행해 ‘고마워요 문재인’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리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일반 네티즌들도 동참하면서 ‘고마워요 문재인’은 이날 오후 12시 40분 현재 실검 1위를 당당히 지키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이벤트가 널리 퍼지면서 국내 N 포털 사이트에서 10시 20분께 첫 등장이후 굳건히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문재인' 이외에도 문 대통령 관련 검색어는 네이버에서는 '문재인 우표', '문재인 기자회견' 등 4개가, 다음에서는 '대통령 기자회견'과 '문재인 우표' 등 2개가 실검 순위 10위권에 올랐습니다. 



SNS에서도 '#고마워요_문재인'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취임 100일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청래 전 민주당 최고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문재인정부 성공'이라는 추가 제시어를 제시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때까지 이날 하루 단식에 돌입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출범 100일을 응원했습니다. 정청래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정청래입니다. 부탁해도 될까요?”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습니다. 정 전 의원은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가 ‘고마워요 문재인’”이라면서 “‘문재인정부 성공’도 실검에 올라갈 수 있도록 ‘문재인정부 성공’도 부탁한다. 우린 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 성공~”이라고 밝혔습니다. 



최민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누리꾼들이 포털사이트에 ‘고마워요 문재인’을 검색해 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축하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다시는 지·못·미는 없을 거다”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째인 17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고마워요 문재인’이 오르자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살충제 달걀 먹게 해줘서 고마운 꼴”이라고 비꼬았습니다. 신 총재는 이날 트위터에 “고마워요 문재인, 살충제 달걀 먹게 해줘서 고마운 꼴이고 살충제 날계란 먹게 해줘서 고마운 꼴”이라며 글을 올렸습니다.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피하는 살충제 계란을 국민이 안심하고 못 먹는 꼴이고 불안한 꼴이다. 국민 먹거리 계란을 위해 文대통령께 날계란 먹기 캠페인 제안한다”고 비꼬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문재인 우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취임 후 100일 기념우표가 지역 곳곳에서 매진이되고 있습니다. 우표를 판매하는 우체국에는 긴 줄이 생기고 번호표를 나눠주는 풍경도 보였습니다. 오프라인 구매가 어렵자, 온라인으로 우표를 사려는 구매자들이 몰리면서 인터넷우체국은 오전 9시께 다운돼 오전내내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우표첩의 경우 사전 판매 열풍에 힘입어 당초 계획인 2만 부에서 1만2천부를 추가로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역대 대통령 취임기념 우표첩이 추가 발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가운데 한 SNS 사용자가 작성한 대통령께 바치는 헌사의 시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사용자는 자신의 SNS에 “고마워요 문재인. 고마워요 청와대”란 글귀와 함께 짧은 시를 게재했습니다. 해당 시가 게시되자 누리꾼들은 “너무 감동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대” “최고입니다” 등의 댓글을 달며 열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문재인'' 실검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4일과 16일 이틀 동안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7일 발표한 2017년 8월 3주차 주중집계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0.6%p 내렸지만 70%대 초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0.8%p 오른 22.1%였으며 ‘모름·무응답’은 0.2%p 감소한 6.7%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간의 지지율 추세를 보면 5월 4주차에는 84.1%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강경화·안경환 장관 후보자 인사 논란과 오토 웜비어의 사망 등 외교·안보 쟁점이 누적된 6월 3주차에는 74.2%로 하락했습니다. 



이후 한미·G20 정상외교가 이어진 7월 1주차에는 76.6%로 반등했지만 송영무·조대엽 장관 후보자 논란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한반도 안보 불안이 고조된 근래에는 70%대 초기으로 떨어졌습니다.하지만 네티즌들은 문재인 정부 100일을 맞아 ‘고마워요 문재인’ ‘고마워요 청와대’를 포털사이트와 SNS에 검색하면서 축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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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했다. 한미정상회담에 첫 일정으로 방문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 축사 전문도 함께 확인 할수 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미국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 도착 뒤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헌화하는 것을 한미정상회담 첫 일정으로 잡았다. 




지난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장진호 전투는 6·25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이 전투를 통해 많은 난민이 ‘흥남철수’로 (피란)했다”고 전했다. 



또한, “문 대통령 부모도 이 난민 중 일부였다. 이런 특별한 관계가 있는 곳”이라며 “한미동맹의 특별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문 대통령의 가족사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상징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옴스테드 해병 중장은 이날 기념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뱃지를 달아 줬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을 언급하며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며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라고 밝혔다. 



장진호 전투기념비를 찾는 문 대통령은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이날 오후 워싱턴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방미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기념비에서 헌화를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미 버지니아 주(州) 콴티코 해병대 박물관에 건립된 장진호 전투 기념비는 지난달 4일 제막식을 열고 일반에 공개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과 함께 한미동맹의 주요 상징물로 떠올랐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 미국 해병대 1사단 1만5000여명이 북한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강계를 점령하려다 함경남도 장진군의 호수 인근에 숨어 있던 중공군에 포위돼 미 해병대 4500여명이 전사한 전투다.

 


이 전투로 10만여 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고, 이 과정은 흥행 영화인 '국제시장'에서도 다뤄졌다.


장진호 전투를 통해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켜 피난민 9만1000여명이 흥남부두를 통해 철수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의 부모는 '흥남 철수'로 남하한 피난민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다"면서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때 (흥남철수 작전에 동원된)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고 말했다.



이어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면서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일정이자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외교전략이기도 한 셈이다.



이날 행사에는 로버트 넬러 미 해병대사령관, 글렌 월터스 해병대 부사령관을 비롯해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이 참석했다. 원래 40분으로 예정됐던 이날 행사는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됐다. 



한편 기념비 건립비용(60만 달러, 한화 약 6억8천만 원) 중 3억 원을 우리 정부가 지원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 축사 전문.


『존경하는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님, 옴스테드 장군님을 비롯한 장진호전투 참전용사 여러분, 흥남철수작전 관계자와 유족 여러분, 특히 피난민 철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알몬드 장군님과 현봉학 박사님의 가족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에 드디어 왔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첫 해외순방의 첫 일정을 이곳에서 시작하게 돼 더욱 뜻이 깊습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알몬드 장군의 명령을 받은 故 라루 선장은 단 한 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무기와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무려 1만4천 명을 태우고 기뢰로 가득한 '죽음의 바다'를 건넌 자유와 인권의 항해는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남쪽 바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었습니다.

2년 후, 저는 빅토리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서, 저는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세계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인 이유입니다.

제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항해 도중 12월 24일 미군들이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그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저는 늘 고마웠습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대한민국은 여러분과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기억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습니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또한, 한미동맹은 저의 삶이 그런 것처럼 양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67년 전, 자유와 인권을 향한 빅토리호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 또한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습니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십니다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 변호사님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죽기 전에 통일된 한반도를 꼭 보고 싶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한 그루 산사나무를 심습니다. 산사나무는 별칭이 윈터 킹(Winter King)입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라는 크고 알찬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이 50여 분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장진호 참전용사와 흥남철수 관계자, 그리고 유족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28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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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정연설을 마친 친절한 문재인 대통령 대해 청와대 공식 페이스북에 재밌는 일화가 소개 되었다.'친절한 대통령'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일화 네 개를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격의 없고 쾌활한 성격으로 '유쾌한 정숙씨'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친절한 재인씨'라는 별명이 붙으면 재밌을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에 작지만 흐뭇한 네가지 일화를 알아보았다.

 친철한 대통령 일화



1. 청와대 직원식당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오후 사전 예고 없이 청와대 여민2관 직원식당을 방문해 일반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점심 메뉴로는 짜장 볶음밥이 메뉴로 나왔더랬죠. '일어나서 인사?' 박수?' 고민하고 있던 직원은 '안뇽~'하며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에게 이래도 되나?'라고 고민하고 자책할 무렵 문 대통령은 '안뇽~'이라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직원 숙소, 출·퇴근 대중교통, 여직원 휴게실도 살펴봐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과 직원식당에서 함께 식사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지난달 12일 여민2관 직원 식당에서 수송부·시설부·조리부·관람부 등 기능직 공무원과 함께 오찬을 한 바 있습니다.


2. 청와대 뒷산 길



연일 격무 중인 임종석 비서실장은 점심을 일찍 먹은 후 짬을 내 쉬려고 직원 식당에서 밥을 '폭풍 흡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 식당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비서실장 건강을 '특별히' 챙겨 청와대 뒷산 길을 1시간가량 오르는 '가벼운' 산책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산책길에서 만난 직원에게 '수고한다'며 인사를 건넸다고 하네요.


3. 청와대 본관2층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김동연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물개 박수'를 쳐 화제를 모았습니다. 기존에 볼 수 없던 '파격 의전'이었다는 평인데요, 임명식은 주인공을 위한 자리가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뜻이었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김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준 뒤 김 부총리의 아내 정우영 씨에게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정부 인사 임명식에서 배우자를 위해 꽃다발을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정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한 것 역시 대통령이 직접 낸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이거 제가 준비하라고 한 겁니다^^"라며 자랑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4.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청와대로 복귀하던 중 차에서 잠깐 내렸습니다.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국방부 군악·의장대의 의장시범을 보고 의장대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주변에 있던 시민들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해준 후 청와대로 복귀했는데요, 사전 계획에 없던 일이라 의장대원·경호실 측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문 대통령은 의장대원들 뒤에 있던 인형 탈을 쓴 이들과도 웃으며 악수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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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김태흠 의원(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자기들이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을 때 자기들이 죽던지 이미 폐족이 돼야 될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막말이지?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안 그래도 가슴 아플 사람들인데 너무 상처 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김태흠 의원 국회의원 프로필 및 문재인, 안희정 관련 막말

김태흠김태흠 의원

학력

1975년 수부초등학교 졸업

1978년 웅천중학교 졸업

1981년 공주고등학교 졸업

1990년 건국대학교 무역학 학사

2003년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경력

1998 ~ 2003 - 국무총리실 행정관

2004 ~ 2006 - 한나라당 충남도당 대변인

2006 ~ 2007 - 충청남도 정무부지사

2008 ~ 2009 - 한나라당 충남도당 위원장

2012 ~ 2016 - 제19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2016 ~ 2020 - 제20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19대


2012년 5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충남 보령시 서천군)

2013년 11월 24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전주 교구의 일부 사제들이 이틀 전인 11월 22일 시국미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언급하자,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는 ‘종북구현사제단’에 가깝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사제들은 사제복 뒤에 숨지 말고 종북성향을 분명히 국민들 앞에 드러내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2013년 11월 26일 비정규직인 국회 청소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두고 “노동3권이 보장되면 파업만 벌일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서 국회의원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에 "청소용역인지 뭔지 때문에 요즘 죽을 맛이다, 악플 댓글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의 심정을 알겠다"라고 막말하여 또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며 기자들에게 “국회에서 저렇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바람직하지 않다”라면서 유가족을 노숙자에 비유하는 듯한 언급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새누리당 내부에서도“이런 발언과 행태는 구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비판받았다.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선정한 2015년 6월의 워스트 인사에 선정되었다. 2015년 6월에 충남도의회 새누리당 소속 도의원 등이 참석한 메르스 관련 충남도내 현안과 총선 문제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폭탄주 등 술판을 벌여 논란이 됐다. 의원들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음주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국민들이 메르스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고, 노심조차 사태가 진정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안전조치가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는 시기에 적절치 않은 처신이었다고 평가하였다.


20대 - 당선


2016년 5월 ~ 2020년 5월 제20대 국회의원(충남 보령시 서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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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던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ActiveX)의 완전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어 눈길을 끌고 있다. ICT(정보통신기술) 적폐 청산을 위한 방안 중 하나다.]


문재인 ICT 관련 인재 영입 - 유웅환 박사 문재인 영업 인사 '프로필' ( 사진 ) - 문재인의 인재


http://clickhere.tistory.com/entry/유웅환-문재인-인재-영업-인사의-프로필-사진 


문재인 공인인증서 액티브X 완전 폐지 - 문재인 프로필




문재인 대선후보 - 국회의원 프로필

출생일 1953년 01월 24일, 경남 거제시

소속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직업         정당인, 전직 국회의원


신체 혈액형 B형


학력


1972 ~ 1980 경희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1         경남고등학교 졸업

~ 1968         경남중학교 졸업

~ 1965         남항초등학교 졸업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 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되었다. 제대 후에 다시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풀려나왔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 임용이 거부되고 나서,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에 참여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하였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랙킹을 떠났고, 히말라야 체류 중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경력


2015.12 ~ 2016.01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2015.02 ~ 2015.12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2012.05 ~ 2016.05 제19대 국회의원

2011.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2011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2010.08 ~ 2012.04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09.09 ~ 2010.08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2007.08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7.03 ~ 2008.02 대통령비서실 실장

2005.01 ~ 2006.05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4.05 ~ 2005.01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3 ~ 2004.02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1 ~ 2003         부산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

2001 ~ 2002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1996                         부산YMCA 이사

1995 ~ 2003.02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1995 ~ 2002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1994                         노동자를 위한 연대 노동상담소장

1989 ~ 2002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부이사장

1988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1980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수상


2015.12 제17회 백봉신사상

2014.12 제16회 백봉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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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웅환  유웅환 문재인 인재 영업 인사의 프로필 ( 사진 )





'유웅환 박사'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인텔, 필립스반도체, 컴팩, IBM 왓슨,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옵티로닉스 등 7곳의 일류기업에 합격했다. 


나이 : 46세

학력 : 한국과학기술원 졸업


근데 왜케 사진마다 얼굴이 다르신지? ㅋㅋ...


경력


싱기포르 국영 연구소 객원 연구원

인텔 수석매니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최연소 상무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시니어 회원

열린문청소년재단 열린문사회복지센터의 창립 멤버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



'유웅환 박사'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인텔, 필립스반도체, 컴팩, IBM 왓슨,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옵티로닉스 등 7곳의 일류기업에 합격했다. 그리고 인텔에서 10년간 근무하였으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최연소 상무, 현재는 현대차 연구소 이사로 근무 중이다. 화려한 경력이 보여주듯 저자의 성과는 대단하다. 이 업적의 핵심 메시지는 꿈이다. 실리콘밸리를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고 도전하자는 것이다. 저자 외에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사례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에 취업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 취업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실력을 갖춘 사람에게 해당한다. 사례에 등장하시는 분들은 박사 출신 혹은 카이스트 혹은 대기업 경력직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B 레벨의 사람들이 A 레벨로 도전하는 스토리. 하지만 이때의 마인드를 D 레벨에 적용시켜 C 레벨로 가는 지침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문재인 캠프, 前 인텔 수석매니저 유웅환 박사 영입 "4차 산업혁명 선도·일자리 창출 위한 의지 담은 것" 캠프 영입 계기로 미 국적 포기, 대한민국 국적 회복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한국에서 공부하였다. 지난 2001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싱가포르 국영 연구소에서 1년간 객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글로벌 취업에 도전, 인텔, 필립스반도체, 컴팩, IBM 왓슨,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옵트로닉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인텔에서 10년간 근무하였으며, 수석 매니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또한 산호세 근무 당시 벤처 기업, 매킨지, 보스턴 컨설팅 등 월스트리트 여러 투자회사들의 기술자문을 하였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최연소 상무로 전격 발탁, 시스템 반도체 칩과 플랫폼의 설계와 관련된 일을 하였다.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콘에서 두 차례나 최우수 논문상을 받는 등 인텔과 삼성, 국제 학회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현대자동차 연구소 이사로 미래형 자동차 개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시니어 회원이며, 2013부터 3년 연속 전기전자공학회 펠로우fellow로 추천받기도 하였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수천 회의 멘토링 특강을 하였다. 특히 대한민국 인재들을 위한 글로벌 커리어 컨설팅을 수행, 실제로 수백 명의 취업을 도왔다. 열린문청소년재단 열린문사회복지센터의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26년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

문재인, 인텔 수석매니저 출신 유웅환 영입 

http://v.media.daum.net/v/20170223101723386?f=o


文, 4차산업 '맞춤형 인재' 영입.."일자리 방점" 

http://v.media.daum.net/v/20170223093517618?f=o


[신간] 세계기업 7곳서 러브콜 받은 한국청년 

http://v.media.daum.net/v/20160121054813824?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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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프로필 ( 문재인 영입 인사 ) - 특수단체인, 전 대학 총장


정세현정세현 문재인 영입 인사


정세현(丁世鉉, 음력 1945년 5월 7일 ~ , 만주)은 대한민국의 외교학자이다. 

제29대 및 제30대 통일부 장관이자 원광대학교 제11대 총장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국토통일원에 들어갔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1945년 6월 16일에 일본령 만주국 싼장 성 자무쓰 시에서 태어난 '해방둥이'이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만주 변방의 자무쓰로 이주해서 한의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정세현이 태어나고 두 달 뒤 해방이 되었다. 생후 100일 만인 9월 말에 강보에 싸여 그곳을 떠나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에 도착하였다. 중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친숙해서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1973년에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한비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에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서 뽑은 공산권 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통일 관련 업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 모택동 시대의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업적인 전공은 남북관계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 외교였다.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원으로 특채되었고, 1995년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 시절 '베이징 쌀회담'에서 뛰어난 수완으로 능력을 발휘했고, 1998년 통일부 차관 시절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회담에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남북 당국간 회담만도 30여 차례가 넘었던 2002년에는 장관급회담 대한민국 측 수석대표로서 매끄럽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세현이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한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남북 접촉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는데, 남북대화만 95차례나 이어졌고 1971년 이래 남북 간에 체결된 143개 합의 가운데 73개가 정세현의 장관 재임기간에 이뤄졌다. 남북 관계에서 획기적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개성공단은 오롯이 정세현의 손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 철도 연결 사업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을 당시 정세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고 끝내 정세현이 개성공단의 첫 삽을 떴다. 정세현의 주도 하에 2002년 9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ㆍ도로 연결 재착공식이 치러졌고 마침내 2009년 10월 경의선과 동해선이 개통되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형욱 납치사건, 동백림 사건 등을 당시 뉴스를 통해 상세하게 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김정남 피살 사건을 보면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며 “절대 권력자의 정적 제거 유혹이랄까, 발본색원으로 해석한다”고 강조

학력


경기고등학교

1967년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과정 입학

1971년 : 학사학위 취득

1971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입학, 대학 조교

1973년 : 국제정치 석사학위 취득

1975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박사과정 입학

1982년 : 국제정치 박사학위 취득


경력


1977년 11월 : 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8]

1986년 2월 : 통일원 대화운영부장

1986년 3월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990년 3월 : 세종연구소 기획조정실 실장

1991년 4월 ~ 1993년 4월 :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1993년 5월 ~ 1996년 12월 :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

1996년 12월 : 제3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1998년 3월 : 제4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1998년 3월 ~ 1999년 5월 : 제11대 통일부 차관

1999년 9월 :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2001년 4월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2001년 5월 ~ 2002년 1월 : 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통일)

2002년 1월 ~ 2003년 2월 : 제29대 통일부 장관

2003년 2월 ~ 2004년 6월 : 제30대 통일부 장관

2004년 9월 :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2004년 9월 ~ 2010년 2월 : 경남대학교 석좌교수

2005년 2월 ~ 2009년 3월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2006년 7월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2010년 12월 제11대 원광대학교 총

2015년 10월 한반도평화포럼 상임공동대표


상훈


1962년: 문교부장관상

1968년: 국회의장상

1978년: 통일원장관상

2002년: 청조근정훈장

2014년: 제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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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 국회의원 프로필 - 박근혜, 문재인


정두언전 국회의원, 정두언



정두언 1957년 3월 6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학력

- 서울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3학년 재학중

- 국민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 조지타운 대학교 대학원 정책학 석사

- 경기고등학교

- 배문중학교

- 창서초등학교

정두언은 1957년 3월 6일에 서울에서 운전기사인 아버지와 공사장 잡일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광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 때 군수를 지냈고 아버지는 해방후 만주에서 귀국하여 사촌 형의 인연으로 서울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의 아저씨뻘 되는 친척인 정성태는 먼 친척 동생이던 그의 아버지를 각별히 여겼는데 이때문에 그의 가족은 정성태 전 의원을 큰 아버지라고 불렀다. 정성태는 설산 장덕수의 권고로 한민당에 입당한 이래 민주당, 신민당에서 활약하였으며 64년 한일협정 비준에 반대하여 의원직을 사퇴했다. 또한 1969년 8월 31일 광주에서 ‘3선 개헌반대 천리길 헌정수호행진’을 시작해 11일 동안 걸어서 서울에 진입하려다가 정사복 경찰중대에게 저지당하고 서울 삼청동 자택으로 이끌려갔다.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친척 형인 정성태 의원의 운전기사를 한 연줄로 일가가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창서국민학교와 배문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 시절


정두언은 청소년기에 가정이 불우한 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서대문 모래내 시장에 좌판을 펴서 5남매를 교육시켰다. "아버지는 늘 밖으로 도셨고 수시로 어머니를 구타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으로 내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이 너무 두렵고 싫어서 자기애 또는 자존심을 들어냈다."며 자신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고백하기도 했다.


1973년에 경기고에 진학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그는 팝송을 많이 불렀는데 화장실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노래를 불렀다 전해지나 가수의 꿈을 접고 서울대 무역학과에 진학하였다. 서울대 재학 시절 록밴드를 결성했다. 보컬그룹명은 'spirit of 1999'였는데 세기말을 염두에 둔 작명이었다. 정두언은 학과에서 스타급이었다. 술자리나 회식 또는 연수회를 가면 언제나 사회를 맡았고 분위기를 주도하였다.[3]


그 뒤 진로를 고민하며 도서관에서 생활하던 중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였다. 당초 고시 성적이 우수했지만 실습점수가 0점이었다. 구청 인사 담당자와 시비가 붙자 해당 관계자가 악심을 품고 영점 처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다른 인사 담당자가 그를 합격시켰다. 그 뒤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합격자들에게 부여되는 특혜인 장교 복무 대신 사병으로 자원 입대하여 강원도 양구의 부대에서 복무하고 육군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그 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 사무관시보에 임용되었다.

관료 생활


그 뒤 행정 사무관시보로 임관 후 정무제2장관실에 배속되었다. 당시 노태우 정무제2장관을 보좌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20여년 간 정무장관실, 문화체육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국무총리 비서실 등을 거쳤다.


노태우가 정무제2장관에서 문화체육부장관으로 발령나자 그를 따라 문화체육부에 배속되어 올림픽 개최 지원업무를 담당하였다. 1985년 1월에는 국무총리실로 발령, 청소년대책반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뒤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비서관으로 있을 때 상사의 순직을 보기도 했다. 1987년 4월에는 4.13 호헌 결사 반대 운동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 해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KBS 방송의 드라마급 주연을 뽑는 KBS 탤런트 공채에 했던 그는 4단계 최종 시험까지 합격했지만 아내와 가족들의 만류로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1991년 미국으로 특별 유학, 2년 간의 연수를 받았으며 이 기간 중 조지타운 대학에도 다니면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국무총리 비서실로 옮겨 국무총리실 정무 비서관, 정보 비서관, 공보 비서관 등을 지내고 2000년에 정계에 입문하라는 이회창의 권고로 정계 입문을 결심, 사직서를 제출, 의원면직하였다. 그러나 2000년 선거에서는 낙선하고 말았다.


정계 입문

정계 입문 초기

정치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2000년 서울 서대문구에 출마했다가 장재식 후보에게 2000표 차이로 떨어졌다. 이 때의 참패로 그는 우울증을 겪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우울증 치료를 받고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2개월간 병상에 입원했던 그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는데 국회의원 이명박이었다.


당시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던 이명박은 정두언에게 정중히 캠프 합류를 권했다. 그렇게 그는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자 캠프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이명박은 그에게 "공직생활 20년을 채워 연금을 타도록 해주겠다"며 정 의원을 영입했다.그는 '이명박의 컨셉이 시대정신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서울시장 출마를 거의 혼자 준비했다.'는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고 이명박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서울시 부시장


민선 3기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당선으로 서울시 정무 부시장이 되었다.


2003년 서울특별시 프로축구단 추진위원장[5] 에 위촉되었다. 2004년 서대문(을)구에서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1년 그는 공무원 생활의 경험을 근거로 총리 등 행정부 고위 관료의 부끄러운 실태를 공개하고 비평한 책인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를 발표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치 활동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후보 캠프의 선대위 기획본부장과 전략기획 총괄팀장으로 활동하며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자 캠프에서 선거 전략을 담당하였으며, 2007년 12월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7대 대통령 당선자 보좌역이 되었다.


2008년 18대 총선에 재선한다. 2010년 7․14 전당대회에서 지도부에 입성, 최고위원으로서 중도개혁과 보수혁신의 길을 주장하였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 출판된 저서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는 비효율적인 행정 행태를 비평했으며, 2011년에는 《한국의 보수, 비탈에 서다》라는 또 다른 저서를 출간하였다.또한 가수로 4집 앨범까지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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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국민면접 - 문재인 편 다시보기 - 링크


2017년 2월 12일 (일) 23시05분 문재인


2017년 2월 13일 (월) 23시10분 안희정


2017년 2월 14일 (화) 23시10분 이재명


2017년 2월 15일 (수) 23시10분 안철수


2017년 2월 16일 (목) 23시10분 유승민


대선주자 국민면접


클릭Here - https://www.youtube.com/watch?v=Mz5KUD9XZGA

대선주자 국민면접 - 문재인 대선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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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 문재인 대선후보 - 국회의원 프로필

문재인 대선후보 - 국회의원 프로필





출생일 1953년 01월 24일, 경남 거제시

소속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직업         정당인, 전직 국회의원


신체 혈액형 B형


학력


1972 ~ 1980 경희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1         경남고등학교 졸업

~ 1968         경남중학교 졸업

~ 1965         남항초등학교 졸업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 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되었다. 제대 후에 다시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풀려나왔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 임용이 거부되고 나서,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에 참여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하였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랙킹을 떠났고, 히말라야 체류 중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고, 같은 해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경력


2015.12 ~ 2016.01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2015.02 ~ 2015.12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2012.05 ~ 2016.05 제19대 국회의원

2011.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2011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2010.08 ~ 2012.04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09.09 ~ 2010.08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2007.08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7.03 ~ 2008.02 대통령비서실 실장

2005.01 ~ 2006.05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4.05 ~ 2005.01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3 ~ 2004.02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1 ~ 2003         부산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

2001 ~ 2002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1996                         부산YMCA 이사

1995 ~ 2003.02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1995 ~ 2002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1994                         노동자를 위한 연대 노동상담소장

1989 ~ 2002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부이사장

1988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1980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수상


2015.12 제17회 백봉신사상

2014.12 제16회 백봉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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