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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우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박정희 우표 명칭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우표' 로써 우표 발행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정희 우표 발행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박정희 우표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강행하자 공무원들이 발행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정사업본부 기념우표는 행사우표, 시리즈우표, 공동우표, 특별우표 등으로 나뉜다. 박 전 대통령 탄생 기념우표는 행사우표로 분류됐다. 



행사우표는 국가적인 행사나 역사적으로 뜻 깊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하는 우표다. 




당시 위원회 심의에 부쳐진 기념우표 중 행사우표로 분류된 것은 총 7가지로, 제15회 식품안전의 날 기념우표(식품의약품안전처), 3050국립공원기념사업 기념우표(국립공원관리공단), 우당 이회영 선생 탄신 150주년 기념우표(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백범일지 출간 70주년 기념우표(백범김구기념관),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대회 기념우표(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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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백범일지 우표와 식품안전의 날 기념우표만 부결되고, 나머지 안건은 심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우표 사업 심의 과정에서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최명길 더불어민주당(현 국민의당) 의원이 우정사업본부에서 제출 받은 우표발행심의위원회 회의록과 속기록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에 대한 타당성에 대해 단 한 번의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심의를 통과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최 의원은 “박정희 기념우표에 대해서는 발행하기로 결정한 반면 백범일지 기념우표는 왜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는지 이유를 확인하려 했으나 우표발행심의위원회 회의록에서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두 우표의 발행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부결된 백범일지 기념우표와 심의를 통과한 박정희 탄생 기념우표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회의 6일 전에 심의위원들에게 안건을 미리 배포해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회의에서 별도 언급이 없었던 것”이라며 “표결로 발행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냥 통과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국가공무원노조와 우정본부 공무원들로 구성된 노조 미래창조과학부지부(우본)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국민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우표 사업은 청산해야 할 적폐”라며 “박 전 대통령 기념우표 발행은 보편적 우편·금융서비스를 수행하는 우정사업본부 이미지와 직원들의 자부심을 심대하게 훼손한다”고 반발했다. 




박정희 대통령 100주년 기념우표 사업은 지난해부터 추진됐다. 경북 구미시가 지난해 4월 우정사업본부에 기념우표 발행을 요청하자 우정사업본부는 같은해 5월 우표발행심의위원회를 열어 우표 발행을 결정했다.



우정사업본부는 30일까지 디자인 도안을 확정하고 다음달 10일 인쇄 발주를 거쳐 9월15일 우표를 발행할 예정이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기념우표 발행 일정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국가공무원노동조합(국공노)과 민족문제연구소는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국민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제작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공노 측은 “박 전 대통령 탄생기념 우표는 우정사업본부 조합원의 자부심을 훼손하고 ‘우표류 발행 업무 처리 세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우표류 발행 세칙에 따르면 정치적·종교적·학술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는 기념우표를 발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박 전 대통령 우표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고 국공노 측은 설명했다. 


또 굳이 따지자면 1955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80세 기념우표가, 1956년에는 81세 기념우표가 발행된 적은 있지만 대통령의 출생 기념우표는 전례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공노 관계자는 “우표발행심의위원회의 권위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시민 동의 없이 구미시의 일방적 요청으로 이뤄진 박정희 기념우표 사업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시 측은 9월 15일 60만장을 발행할 계획인 우표는 절차에 따라 추진하는 것으로 시에서 일정 부분 구매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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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프로필 ( 문재인 영입 인사 ) - 특수단체인, 전 대학 총장


정세현정세현 문재인 영입 인사


정세현(丁世鉉, 음력 1945년 5월 7일 ~ , 만주)은 대한민국의 외교학자이다. 

제29대 및 제30대 통일부 장관이자 원광대학교 제11대 총장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국토통일원에 들어갔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을 지냈으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1945년 6월 16일에 일본령 만주국 싼장 성 자무쓰 시에서 태어난 '해방둥이'이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만주 변방의 자무쓰로 이주해서 한의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정세현이 태어나고 두 달 뒤 해방이 되었다. 생후 100일 만인 9월 말에 강보에 싸여 그곳을 떠나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에 도착하였다. 중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친숙해서 중국에 관심이 많았다. 1973년에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한비자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에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서 뽑은 공산권 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통일 관련 업무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 모택동 시대의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직업적인 전공은 남북관계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 외교였다.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원으로 특채되었고, 1995년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 시절 '베이징 쌀회담'에서 뛰어난 수완으로 능력을 발휘했고, 1998년 통일부 차관 시절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한 차관급회담에 수석대표로 활동했다. 남북 당국간 회담만도 30여 차례가 넘었던 2002년에는 장관급회담 대한민국 측 수석대표로서 매끄럽게 업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세현이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한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남북 접촉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는데, 남북대화만 95차례나 이어졌고 1971년 이래 남북 간에 체결된 143개 합의 가운데 73개가 정세현의 장관 재임기간에 이뤄졌다. 남북 관계에서 획기적 분수령으로 평가받는 개성공단은 오롯이 정세현의 손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는데,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 철도 연결 사업이 시작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을 당시 정세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고 끝내 정세현이 개성공단의 첫 삽을 떴다. 정세현의 주도 하에 2002년 9월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ㆍ도로 연결 재착공식이 치러졌고 마침내 2009년 10월 경의선과 동해선이 개통되었다.


“김대중 납치사건, 김형욱 납치사건, 동백림 사건 등을 당시 뉴스를 통해 상세하게 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김정남 피살 사건을 보면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되지 않겠느냐”라며 “절대 권력자의 정적 제거 유혹이랄까, 발본색원으로 해석한다”고 강조

학력


경기고등학교

1967년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학사과정 입학

1971년 : 학사학위 취득

1971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석사과정 입학, 대학 조교

1973년 : 국제정치 석사학위 취득

1975년 :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 박사과정 입학

1982년 : 국제정치 박사학위 취득


경력


1977년 11월 : 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8]

1986년 2월 : 통일원 대화운영부장

1986년 3월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990년 3월 : 세종연구소 기획조정실 실장

1991년 4월 ~ 1993년 4월 :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1993년 5월 ~ 1996년 12월 : 대통령비서실 통일 비서관

1996년 12월 : 제3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1998년 3월 : 제4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1998년 3월 ~ 1999년 5월 : 제11대 통일부 차관

1999년 9월 :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2001년 4월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2001년 5월 ~ 2002년 1월 : 국가정보원장 특별보좌관(통일)

2002년 1월 ~ 2003년 2월 : 제29대 통일부 장관

2003년 2월 ~ 2004년 6월 : 제30대 통일부 장관

2004년 9월 :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2004년 9월 ~ 2010년 2월 : 경남대학교 석좌교수

2005년 2월 ~ 2009년 3월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2006년 7월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2010년 12월 제11대 원광대학교 총

2015년 10월 한반도평화포럼 상임공동대표


상훈


1962년: 문교부장관상

1968년: 국회의장상

1978년: 통일원장관상

2002년: 청조근정훈장

2014년: 제16회 한겨레통일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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