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재철 의원 (자유한국당) 은 "박 전 대통령이 물론 탄핵 기각 또는 각하를 바랐거나 믿었었기에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는 있다"면서도 "얼마 전까지 헌법의 마지막 수호자였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헌법을 무시하는 듯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슈사항으로 심재철과 서울대 임원등은 과거서울대내에 침입한 프락치를 잡은후 고문을 가했다. 이일로 당시 같은 간부였던 유시민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다.


심재철 의원 국회의원 프로필 및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글 - 자유한국당

심재철심재철 의원 (자유한국당)

1958년 전라남도 광주시(현재의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진학한 후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대학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에 항거하여 수만 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벌인다. 밤 8시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시위지도부는 계속 시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고 이에 그는 철수를 강하게 주장하여 "서울역 회군"이라는역사적인 결정을 한다.

이 자진 해산 3일 후에 광주에서는 5.18이 벌어졌고 민주화는 그로부터 7년 뒤에나, 진정한 문민정부는 그로부터 12년 뒤에나 이뤄진다. 

후에 심재철은 "엄청난 역사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20대 초반의 우리는 너무 어렸고, 상황을 너무 몰랐다. "고 술회한다.

심재철과 서울대 임원등은 당시 서울대내에 침입한 프락치를 잡은후 고문을 가했다. 이일로 당시 같은 간부였던 유시민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다.


2006년 유시민의 장관 취임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예전 일명 서울대 프락치 사건 (학생운동권의 민간인 고문 사건)에서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받았었던 전기동 씨가 자신을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1인 시위를 하여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매우 좋아하였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 씨를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 씨는 유시민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을 했다. 그럼 누가 폭행했냐고 묻자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고,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 씨를 돌려 보내며 이사건은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당시 전기동씨의 주장은 자신은 (가짜 서울대생이였지) 프락치가 아님에도 여러사람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했고, 유시민은 폭행이 일어날 때 마다 자리를 피했다가, 끝나고 나타나는등 교묘하게 뒤에서 지시하였다라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볼때 폭행을 뒤에서 조종한 자가 유시민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보수언론의 관심이 급속히 냉각되어 이후 전기동씨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요약하면, 당시 군사 정권의 독재(와 그에 수반되는 다양한 방식의 불법적인 행태, 예를 들면 고문 등)에 반대하며 싸우던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똑같이 민간인에게 고문을 한 사건인데, 이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심재철은 당시에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고 옆에 방조한 유시민만 잡혀 감옥살이를 했다는 얘기이다. 덕분에 서로 할 말이 없어 마타도어가 가장 난무하는 선거때도 이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심재철은 김대중이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허위 진술하였고 이 때문에 김대중은 사형 선고를 받아 진짜 죽을 뻔했다. 이에 심재철은 자신이 가장 심하게 고문을 받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소리를 하였으나, 당시 같이 잡혀있던 김대중 문익환, 송건호, 한완상, 이문영, 고은 등등 재야 민주인사 다수와 조성우, 송기원, 이해찬 등은 취조과정의 폭행과 고문 사실을 폭로하며 '내란음모' 사실을 부인하였다. 


많은 분이 이 글을 보실 수 있도록 공감 한 번씩 눌러주세요. 

로그인도 필요 없습니다.

^.^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