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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신’ 양준혁이 사기 피해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양준혁 해설위원이 10억원 상당의 사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양준혁에게 금품 편취를 목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고 사업가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양준혁 10억 사기피해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양준혁 10억사기


양준혁이 시련의 계절을 겪고 있습니다. 선수 은퇴 후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 데 이어 사기까지 당했습니다.



검찰은 “빚과 투자금을 상계 처리하면 보유한 10억원 상당의 다른 회사의 전환사채를 주겠다”고 속여 양 위원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힌 혐의(사기)로 동갑내기 사업가 A씨를 기소했다고 18일 밝혔습니다. 검찰은 A모씨가 약속한 금액의 전환 사채를 보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양준혁 위원은 프로야구 데뷔 4년 만에 억대 연봉을 달성했습니다. 2008년 마지막으로 삼성 라이온즈와 2년짜리 계약을 맺었습니다. 삼성은 양준혁에게 2년 계약금과 연봉 등을 포함해 24억원을 지급했습니다.



1993년 데뷔부터 2010년 은퇴까지 연봉과 계약금으로 72억 3000만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는 채널A 예능프로그램 ‘웰컴 투 돈월드’ 등에 출연해 방송가로 보폭을 넓히기도 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18일 양준혁을 상대로 전환사채를 넘겨주겠다고 속여 10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로 불구속 기소된 사업가 정모 씨(48)를 심리 중입니다.



정씨는 스포츠게임업체에 10억원의 빚을 진 뒤 이 회사에 10억원을 투자한 양준혁에게 “빚, 투자금을 상계 처리해주면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의 전환사채 10억원 어치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정씨는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검찰은 정씨가 양준혁에게 전환사채를 줄 생각과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정씨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양준혁은 과거에도 금전적인 피해를 크게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선수 시절부터 힘을 기르기 위해 먹던 전복과 찜갈비를 조화시켜 직접 개발한 ‘전복 한우 갈비찜’을 2011월 론칭했습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양준혁은 “과메기로 유명한 포항 구룡포에 야구장만 한 바다를 방파제로 막아 전복양식을 하고 있다”며 “은퇴 후를 고려해 시작했는데 연간 50만마리를 판다. 개당 5000~1만원, ㎏당 8만원을 받고 국내외에 팔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2014년 경북 동해안에서 발생한 적조로 그해 9월 19일 양준혁이 운영하는 구룡포읍 석병리 양식장에 전복 11만 6000여마리(9000여만원)가 폐사했습니다. 이에 양준혁은 많은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1993년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야구에 입문한 양준혁은 2010년까지 현역 선수로 뛰며 타율 0.316(7332타수 2318안타) 351홈런 1389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야구재단을 출범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야구계에 봉사했으며, 방송인 및 해설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삼성라이온즈 전 야구선수 양준혁이 10억원대 사기를 당해 재판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누리꾼들은 양준혁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을 표하고 있습니다. 



18일 검찰에 따르면 사업가 정모 씨는 양준혁을 상대로 전환사채를 넘겨주겠다고 속여 10억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를 받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누리꾼들은 “양신 힘내요. 참 무서운 세상이다”(엘**), “아휴… 양신 올해 안 좋은 일 많네”(dgbt****), “좋아하는 선수였는데 왜 이런 기사가? 아무쪼록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shk0****) 등의 반응을 보이며 사기를 당한 양준혁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동시에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 현역 시절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좋은 인성을 가진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양준혁은 은퇴 후에도 팬들로부터 ‘양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양준혁은 2010년 9월 선수에서 은퇴했으며 현재는 방송사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로필


출생 1969년 05월 26일, 대구

소속 NHEMG, MBC 야구해설위원, 양준혁 야구재단 이사장

직업 스포츠 해설가, 전직 야구선수

성별 남성

신체 키 188cm, 몸무게 95kg, 혈액형 O형

데뷔 1993년 '삼성 라이온즈' 입단

학력 영남대학교 상경대 경제학과 졸업



경력

신농촌진흥 캠페인 홍보대사

세계태권도 한마당 홍보대사

근로복지공단 홍보대사

제6회 기후변화주간 홍보대사

구세군 홍보대사

경기도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

국립대구과학관 홍보대사

생활체육대축전 홍보대사

자살예방 홍보대사

통일부 홍보대사

제9회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하계대회 홍보대사

JH스포테인먼트 설립

구세군 홍보대사

멘토리 야구단 창단

스포츠바우처 홍보대사

KOICA 지구촌체험관 자문위원

양준혁 야구재단 설립

투르 드 코리아 홍보대사

생명나눔 친선대사

대구시 홍보대사

SBS ESPN 야구해설위원

월드비전 홍보대사

SBS, SBS ESPN 프로야구 해설위원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기원 스타 서포터즈

홍명보 장학재단 셰어 더 드림 풋볼 매치 홍보대사

전국한우협회 한우 홍보대사

경북지방경찰청 교통홍보대사

아동학대예방 홍보대사

삼성 라이온즈 선수

LG 트윈스 선수

삼성 라이온즈 선수



이승엽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1990년대~2000년대를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이만수-양준혁-이승엽-최형우로 이어지는 본좌대두 계보 중 한 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꾸준한 타격 능력에서 붙여진 양신과 머리가 크다 하여 붙은 양대갈이 있습니다. 


공을 때리려는 건지 투수를 때리려는 건지 분간할 수 없는 타격포즈가 특징. 일명 "만세 타법"이라 불리며 양준혁의 전매특허이기도 합니다. 응원가는 따로 없이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칩니다. 양준혁 특유의 보스기질과 합쳐져 아주 잘 어울립니다.



2011년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은퇴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10에 선정되었습니다.



은퇴 선언 후에도 후배들을 성심껏 지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다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지 않고 방송 활동을 하다 자취를 감추어 코치와 감독이 될수 있을지는 불분명했습니.



2010년 플레이오프는 덕아웃에서 지켜봤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미디어데이에서 문제가 되어 덕아웃에서 퇴장. 하지만 4차전 도중에 난입해서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하였습니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김재현이 SK의 우승컵을 들었을때 카메라는 양준혁의 뒷모습을 비춰줬습니다. 김재현의 경우 타석에 섰으나 양준혁의 경우엔 팀이 패배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엔 없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지도자의 길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합니다. 자신이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김성근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스타일을 섞은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박수 한번에 특타 한번 2011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뉴욕 양키스 구단으로 연수 예정이었으나 사전 언론 노출 관계로 계속 일정이 지연되다가 본인이 고사했습니다. 



2010년 10월 24일에는 대전 갑천 잔디구장에서 제 1회 '양준혁 전국 청소년 야구 대축제'를 개최하였습니다. 야구선수의 이름을 딴 야구 대회로는 한국 최초. 1천여명 55개 팀이 참가했으며 구장만 13개를 대여한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경비만 약 5천만원 들었다고 하는데 양준혁은 이 비용을 사비로 지출했습니다. 본인 말로는 이 대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준혁은 이때를 기점으로 지도자의 길을 일단 접고, 재단 사업을 시작합니다. 2011년 7월 30일 2회 대회 개최. 이 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코치 업무도 중요하지만 유소년 야구 육성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삼성의 코치 제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2011년 6월 13일, 양준혁 야구재단이 출범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삼성 라이온즈 팀에 대한 조언을 꼬박꼬박 해주는 모양. 실제로 2012년 초반 삼성이 극도로 부진하자, 삼성 타자들의 눈빛이 죽어있고 야구를 너무 쉽게 보는 거 같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5월까지 5할 못 맞추면 선두권으로 올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할을 실제로 맞췄습니다.



2012년에는 김응용의 추천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할 뻔했습니다. 본인도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멘토리 야구단을 이유로 코치직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2011년 9월 홈쇼핑에서 직접 개발했다던 양준혁 전복갈비찜을 런칭. 첫 방송 때부터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판매 후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포장 및 음식의 상태 모두 하나같이 엉망이었기 때문. 거기다 홈쇼핑 홈페이지의 부정적인 후기글이 속출하자 홈쇼핑사에서 아예 게시판을 막아버리면서 대차게 욕을 먹었습니다. 어쨌든 이 전복갈비찜 판매는 양준혁 은퇴 이후 최악의 흑역사로 손꼽혔습니다. 갈비찜에도 들어갔던 전복을 포항 앞바다에서 직접 양식하고 있는데 2014년 9월 적조가 발생하는 바람에 전복이 모두 폐사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2012년에도 양준혁은 계속해서 소곱창 등의 식품사업을 벌였습니다. 전복갈비찜 때의 좋지 않았던 반응으로 식품회사에서 신경을 쓴 모양인지 이전보다는 평가가 좋아졌습니다



지난 2014년, 강남의 A스포츠게임업체에서 사업가 정모 씨를 만났는데 A스포츠게임업체의 전환 사채와 맞바꾸는 계약을 맺고 10억을 투자했는데 정 씨는 양준혁에게 "당신은 A업체에 10억 원을 투자했고 나는 같은 업체에 10억원을 빚졌으니 서로 상계 처리하자"고 제안합니다. 대신 자신이 소유한 다른 회사의 전환사채 10억 원 어치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전환사채는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으로, 양준혁은 당시 이 회사의 주가가 뛰고 있다는 말만 믿고 계약을 맺었으나 검찰 수사 결과 정 씨는 해당 주식을 보유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검찰은 정 씨가 양준혁에게 전환사채를 줄 생각과 능력이 애초에 없었다고 보고 정 씨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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