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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네이버지식리스트


온실 효과와 파란 하늘의 비밀


초창기에 틴들은 기체 내 가스들이 열을 흡수하는 정도가 매우 다른 현상에 주목하며 이후 이를 분자론 관점에서 설명하려 했다. 물리학에서 틴들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1859년 가스, 증기와 관련된 복사열에 대한 연구다. 결정 구조에 압력이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던 틴들은 1860년대 이후 태양의 영향, 대기가스와 열복사 연구 등으로 연구 주제를 옮겨 갔다. 그는 기체관을 통해 적외선을 감지기로 보내는 기구를 고안, 전류로 전환된 온도차를 감지해 다양한 기체들의 열 흡수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틴들이 제작한 기체의 적외선 흡수 정도를 측정하는 기구


수증기가 대기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적외선 흡수체이고, 대기 온도를 조절하는 근간이 되는 가스라고 여겼던 틴들은 기구를 사용해 질소, 산소, 수증기, 이산화탄소, 오존, 메탄 등의 적외선 흡수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산소, 질소, 수소의 흡수 정도는 상대적으로 차이가 없었던 반면, 오존이 다른 기체들과 다르게 산소가 있는 곳에서 유난히 큰 흡수 현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기체가 적외선 경로를 방해하지 않지만 일부 기체 화합물은 입사방사선(incident radiation)의 80% 이상을 흡수할 수 있었다. 오존이 산소보다 열을 흡수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점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온도가 중요한 것으로 밝혀지는데, 높은 온도가 낮은 온도보다 더 높은 투과성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틴들은 공기 중의 수증기가 육지의 복사열을 빼앗고 그 변화 정도에 따라 날씨가 변화할 수도 있음을 주장하며 온실효과를 설명했다. 또한 그는 오존과 같이 매우 높은 흡수성을 가지고 있는 기체는 극소량이라도 다른 흡수성이 약한 기체들을 장악할 수 있지만, 기체의 흡수 정도는 점차 약해지기 때문에 밀도는 언제나 흡수량의 증가와 비례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틴들보다 이른 시기의 과학자였던 푸리에(Joseph Fourier) 역시 1824년 지구의 온도 상승이 대기의 간섭 현상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었지만 당시 푸리에는 이를 설명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지 못했다. 즉 틴들의 수증기 실험은 수증기나 이산화탄소와 같은 복사에너지를 흡수하는 물질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설명하며 온실효과를 처음으로 증명한 의미 있는 결과였다. 그는 더 나아가 분자 수준에서 어떻게 빛이 흡수되고 방출되는지를 연구하며 분자들이 화학 반응하며 방출되는 열의 물리적 기원을 설명하려고도 했다.


이후 틴들은 하늘에 있는 파란색이 대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입자들 때문이라는 틴들 현상(Tyndall effect)에 대해 밝힌다. 틴들 현상은 대기 중에 존재하는 미립자 때문에 빛(입자)이 산란되어 빛의 통로가 생기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미립자의 크기가 클수록 빛이 산란되는 정도 역시 비례해 커진다. 틴들 현상은 그가 왕립과학연구소에 있을 당시 강의 극장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하늘 위에 묘사하며 대중들에게 소개되며 인기를 얻었다. 이런 틴들의 연구는 이후 1871년 스트럿(J.W.Strutt)이 수학적 설명을 추가해 이론적으로 하늘이 왜 파란지를 설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틴들은 먼지 입자들이 떠다니는 공기 중에서 빛이 어떻게 산란하는지를 실험하면서 대기 중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탐지하는 데 광선들이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열로 공기 중의 유기 물질을 파괴하는 실험 장치를 사용, 먼지가 하나도 없는 공기 중에서는 광선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발견했다. 틴들의 실험은 현미경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미립자의 위치나 크기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가령, 빛이 산란되는 정도로 입자 크기를 계산하거나, 고분자 물질의 분자 사슬 길이를 구해 물질의 분자량을 구하는 등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틴들은 공기 중에 있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방법을 연구, 일련의 실험 등을 통해 멸균상태의 순수한 공기에서는 박테리아나 미생물이 번식할 수 없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파스퇴르가 했던 공기 중의 미생물을 확인하는 실험을 통해 다른 재료들과 달리 건초국에 있는 박테리아가 100도에서 장시간 끓는 고온에서도 멸균되지 않음을 확인, 끓는 고온에서도 죽지 않는 고초균(枯草菌)을 발견했다. 또한 고초균이 죽지 않고 끓는 동안 그 실험이 진행됐던 실험실 내부의 공기가 건초 박테리아로 완전히 오염, 이전 학자들의 무생물발생설을 완전히 반박하게 되었다. 틴들의 이런 발견은 이후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pasteurisation, 또는 불연속 발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존 틴들

지구 온난화 현상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과학자 중 한 명인 틴들은 미립자와 빛의 산란관계, 결정체의 자기성, 박테리아 연구 등을 다방면에 걸쳐 연구했던 19세기의 물리학자다. 틴들은 대기 중 미립자에 산란되는 빛에 대한 실험으로 왜 하늘이 파란지를 설명했을 뿐 아니라 대기 중 수증기의 복사에너지 흡수 정도와 날씨 변화 연구를 통해 매우 일찍이 지구 온난화 현상에 주목했다. 명강의로도 유명했던 틴들은 대중 강연과 과학해설서 집필 등의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하며 19세기 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영향력 있는 과학 계몽가이기도 했다.

1820년 아일랜드 칼로우에서 태어난 존 틴들은 19세 때까지 그곳에 있는 국립학교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삼각법과 측량술을 배운 뒤 1840년부터 1842년까지 욜에 있는 측량 사무실에서 지도 제작자로 일하며 설계사, 제도사의 능력을 인정 받았다. 1842년부터는 잉글랜드 랭커셔 지역에 있던 연구 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조사 작업을 계속하는 동시에 역학(mechanics)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1843년 당시 잉글랜드 정부의 강압적인 정책과 비효율적인 측량조사에 반대했고, 아일랜드 토목 공학자들이 잉글랜드 군 간부 밑에서 혹독하게 일하고 있던 상황을 비판하며 파업까지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같은 해 11월 파업을 했던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해고된 후 잠시 아일랜드로 떠났다. 이후 그는 1844~1845년 철도 붐 시기 동안 조사연구원이자 철도 공학자로 경력을 이어 갔다.

틴들은 1847년 햄프셔에 있는 퀸우드 컬리지에 새로이 부임했던 에드먼드슨(George Edmondson)의 제안으로 연구원 자리를 수락, 수학과 측량 분야의 교사 일을 시작한다. 퀸우드 컬리지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과학 교육을 위한 실험실을 가진 학교 중 하나였는데 이 곳에서 틴들은 기하학자 허스트(Thomas Archer Hirst)와 화학자 프랭클랜드(Edward Frankland)를 알게 되었다. 틴들은 프랭클랜드를 통해 독일 과학 지식을 접할 수 있게 되며 그런 지식을 반영한 철도 공학의 새로운 연구를 하려 했으나 컬리지 측에 요청한 과학 기구 구입을 거절당했다. 그리고 이듬해 1848년 틴들과 프랭클랜드는 새로운 연구를 위해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다.

1848년 틴들은 마르부르크 대학에 입학해 당시 영향력 있었던 분젠(Robert Bunsen) 교수의 실험 내용과 실용과학 강의를 듣고,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는 난이도 높은 기하학과 수학 계산 수업, 독일의 이상주의 철학 연구에 대한 광범위한 독서와 다양한 철학 저널들의 번역 작업 등을 포함하는 강도 높은 수업 때문에 보통은 3년 이상 재학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틴들은 이 과정을 약 2년 만에 완수한 후 스테그만(Friedrich Ludwig Stegmann)의 지도 아래 1850년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의 틴들에 대해 프랭클랜드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틴들은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니고 활기 넘쳤던 동시에 매우 근면성실하고 성격이 좋았던,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학생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졸업 후 틴들은 마르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베를린에서 온 크노블라우크(Karl Herrmann Knoblauch) 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크노블라우크는 틴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틴들과 만났던 당시 그는 패러데이(Michael Faraday)와 플뤼커(Julius Plücker)가 했던 반자성 연구를 하고 있었다. 틴들도 그 영향으로 반자성과 결정의 광자기적 성질에 대한 일련의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 연구는 이후 틴들 연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틴들은 크노블라우크와 함께 그의 첫 번째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틴들의 연구는 분자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 물리적 성질을 설명하려고 했던 점에서 앞서 전기, 자기장을 통해 자기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패러데이의 장 이론과는 차별점이 있었다.

1850~1856년, 틴들은 자성과 반자성(diamagnetism)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공기 중 빛의 에너지 운동 연구 등을 통해 과학자 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틴들은 패러데이의 후원에 힘입어 1852년 6월 영국 왕립협회 연구원으로 선출되었고, 이듬해 영국 왕립과학연구소(Royal Institution)의 자연철학 교수직을 얻게 되었다. 틴들과 패러데이의 우정은 유명했는데 그 돈독한 관계와 서로에 대한 존경은 그들이 쓴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틴들은 1867년 패러데이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으며 1887년 명예교수로 은퇴하기 전까지 관리자직(Superintendent)을 맡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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